솜솔아빠의 '사글세방'
목마와 숙녀 본문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라디오를 들으면 단골로 듣게 되는 것이
음악을 배경으로 축축하게 젖은 성우의 목소리에 담긴
박인환 시인의 『木馬와 淑女』다.
시가 무언가 서럽고 외롭고 애달픈 분위기를 이렇게 강렬하게 전달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음색과 배경음악과 밤 시간이라는 조화도 있을 터이지만,
과연 라디오의 단골메뉴가 될만하다는 느낌이다.
-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中에서 "박.인.환.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 -
木馬와 淑女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木馬를 타고 떠난 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木馬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少女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木馬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靑春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雜誌의 표지처럼 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